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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선출 뉴스를 보며, 발가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처참하고 고통속에서 조롱받은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원포인트코치 2025. 5. 9. 16:13

예수의 죽음 – 바리새인의 역할까지

저는 기독교은 아닙니다만, 오늘 새로운 교황 선출 소식을 들으며 2000년전 하늘의 뜻을, 인간의 목소리로 외친 한 인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 사실로서 예수의 죽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냉정히 그 현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1. 바리새인: 율법과 위선의 경계에 선 지도자들

바리새인(Pharisees)은 예수 시대 유대 사회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 집단이었습니다. 율법과 구전 전통을 철저히 따르며 민중 속에서 영향력을 키운 이들은, 시간이 지나며 형식주의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권력화된 교단의 가르침 속에서 하늘의 뜻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 율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정결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 외형적 경건함과 사회적 지위를 중시했습니다.
  • 종교 권위와 도덕적 판단 기준을 독점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수 당시 유대교의 정결의식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기 위해 부정함을 피하는 종교적 규범이었습니다. 식사 전 손 씻기, 시체 접촉 후 목욕, 월경 후 미크베(정결탕) 입수 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음식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어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를 철저히 지켰지만, 예수는 겉모습보다 마음의 정결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이들의 위선을 비판하며, 사람보다 규율을 중시하는 태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이는 결국 예수와 바리새인의 충돌로 이어졌고, 그가 체포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정결의식이란? 고대 유대교에서 정결은 단순한 청결을 넘어 하나님과의 거리, 공동체 참여, 거룩함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정결 상태를 유지해야 했으며, 이 개념은 예수 시대 바리새인들이 강조한 율법주의적 종교 실천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2. 예수의 죽음은 왜 일어났는가?

예수는 단순한 종교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종교·정치 권력 구조에 도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외쳤습니다. 이 선언은 단지 영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급진적인 발언으로 여겨졌습니다.

  • 성전의 부패를 지적하며 상인들의 상을 뒤엎었고,
  • 권위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 사람 중심의 종교를 주장하며 기존 체제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예수는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과 로마 총독의 정치적 판단으로 십자가형을 선고받습니다. 만약 지금도 누군가와 나타나 이런 행동을 보인다면 그는 살아남기 힘들겁니다. 인간의 본성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십자가형: 속옷조차 입지 못하고 대달리는 최대의 멸시와 조롱과 고통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이 반역자에게 내리던 극형이었습니다. 예수는 재판 후 심한 채찍질을 당했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채칙에는 쇠붙이나 뼈 같은 것이 끼워져 있어서 그걸로 때리면 몸 여기저기서 피가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다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에서 예수를 채찍질 하는 것을 보고 과장된 것이겠지, 왜 죽을 사람을 저렇게 때리나 하고 저는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것은 십자가형에 수반되는 형벌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쇠붙이가 붙은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니 여기저기 피가 안 터질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는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게 됩니다.
언던에 올라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삽자가 공개 처형을 당했습니다.  
십자가형은 속옷조차 입지 못하고 발가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이는 형벌입니다. 성화에서 차마 그렇게 그릴 수 없어 천으로 앞을 가린 것으로 그리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지독한 형벌은 노예의 반란과 같은 당시 사회에서 최악의 범죄자에게 내리는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대부분 질식사라고 합니다. 온몸의 무게가 매달리게
되고, 호흡이 점점 어려워지며 서서히 생명을 잃게 됩니다. 예수의 경우도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을 것입니다. 
빨리 죽지 않으면 몽둥이로 정강이를 후려쳐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합니다. 예수도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시신은 가족이라도 가져갈 수 없다고 합니다. 보통은 그냥 거기 매달려 들짐승의 먹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를 존경하던 한 부자가 관리에게 부탁해 시신을 수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독한 십자가 형벌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포함해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나서 얼마후에야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4. 인간적인 절망의 고백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을 남깁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고백이 아니라, 철저한 고통과 외로움 속 인간의 절규로 해석됩니다. 그조차 외면당한다고 느낄 정도로 깊은 고통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차마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극심한 육체적 고통속에서 어떤 외침을 과연 외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5. 죽음 이후, 침묵 속에 묻혔던 이름

예수는 서둘러 무덤에 묻혔고, 주변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그의 죽음은 실패한 지도자의 최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과 삶의 방식은 점차 새로운 해석을 낳았고, 용서, 연대, 희생의 상징으로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6.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질문

예수의 죽음은 단지 종교적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 나는 누구를 판단하고 있는가?
  • 외형적 경건함과 진정한 윤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그의 죽음은 위대한 신의 사건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처절한 죽음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신앙을 넘어서 더 깊은 인간 이해와 공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적 메시지를 갖고 살아가는 걸까요? 
예수가 지금 재림한다면 인간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자비로운 마음을 잃지 마십시요. 
사랑하는 마음을 소중히 하십시오. 
2천년전 십자가에 발가벗긴채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려 죽은 한 젊은이의 죽음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기독교 인이 아니더라도, 그가 외쳐선 사랑에 대해서, 새로운 교황선출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본다면 오늘 하루를 보내는 큰 보람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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